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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쥐어짜면 '선진국' 되나?

외국인 노동자 쥐어짜면 '선진국' 되나?  
[기자의 눈] '선진 대한민국'이 진정 자랑스러우려면…  

  2008-09-25 오후 6:48:36 / 프레시안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던 겁없던 대학생 시절, 우연치 않게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했던 때가 있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였다. 기술도 필요없는 '스포트 용접기'에 매달린 채 하루종일 납 냄새를 맡으며 단순작업을 반복했었다.
  
  당시 그 공장에는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일하고 있었다. 연배도 기자와 비슷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현실이었겠지만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면 어눌한 한국어와 짧은 영어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그는 공장 한켠에 마련된 다락방에서 먹고자는 일을 해결했다. 채 1.5평이 안 되는, 창문도 없는 열악한 방이었다. 월급도 한국인 노동자의 60~70%에 불과했다. 음악 듣는 일이 마냥 좋다며 덜컥 구입한 CD플레이어를 '보물1호'라고 자랑하던 청년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25일 오후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령강화위원회 사공일 위원장의 브리핑을 들으면서다.
  
  "외국인 노동자가 숙박비, 식대 직접 부담토록…"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열린 7차 전체회의를 통해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 방안'이라는 것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주로 중소기업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력운용을 '효율화·선진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그런데 그 '방안' 중 한 가지로 제시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현재 대부분 기업들이 부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숙박비, 식대를 이주노동자 본인이 부담토록 관계법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표준근로계약서를 개선해 근로자의 숙식비용 부담 여부를 명확히 하겠다"며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숙식제공에 따른 근로자 비용징수 기준을 마련하고, 노사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숙식비 공제한도, 수습기간 조정 등 최저임금의 합리화를 위한 법 개정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관련규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숙식비를 기업이 부담하는 것은 '권고' 사항이다. 그런데 기업이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이런 비용에 대한 부담여부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아서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사공일 위원장에게 "그렇다면 숙박비, 식대를 앞으로는 외국인 노동자 본인이 모두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공 위원장은 "그렇다"고 했다.
  
  업종과 지역, 개별 기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잔업과 특근을 빠짐없이 하더라도 결국 손에 쥐는 것은 100만 원에서 110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한편 '권고'에 따라 이들에 대한 숙식비를 부담하고 있는 기업들은 매달 10~15만 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한다.
  
  결국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이날 결정은 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매월 10만~15만 원 수준의 숙식비를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 경우 이들이 받는 월급은 90만 원 전후로 쪼그라든다.
  
  사공 위원장은 "숙박비, 식대에 대한 부담을 줄여달라는 것은 중소기업들의 오랜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려는 외국인들은 많다"고까지 했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선 내년 상반기까지 관련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월급을 덜 받는 '수습기간'도 현재보다 늘려 기업부담을 최소화 해주겠다는게 이날 발표된 '방안'의 골자였다. 이 같은 조치는 물론 경제계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이주노동자 쥐어짜기=선진화 지름길?
  
  '국가경쟁력 강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혹은 그 토대 마련)'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 기업활동을 제약해 온 규제를 완화하는 등 각종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에 따른 '과실'이 결국에는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변한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가 늘어나면 중산층과 중소기업, 그리고 서민층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소위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 :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이다.
  
  물론 "경제규모가 양적, 질적으로 발달할 수록 '트리클 다운' 효과는 반감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1% 부자들만을 위한 정권이 아니냐"는 다소 '감정적'인 비난여론도 많다.
  
  하지만 좋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철학'이자, 정치적 '선택'의 영역이라고 인정해 줄 수도 있다. "6개월을 허송세월했다"는 정권 내부의 탄식과 같은 맥락에서, 그 '구체적 결과'가 나오기까지 좀 더 기다려 줄 인내심도 우리 국민들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편하다. 한국사회의 인력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이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한다. 이들에게 밥값, 방값을 추가로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그나마도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줄여버리는 게 '선진국 만들기'의 필요조건이 되는 현실은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기가 곤혹스럽다.
  
  '과격시위 이미지'가 걱정된다고?
  
  이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에서는 이 밖에도 '법질서 강화방안'이 주요하게 논의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면서 예의 '법치'를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최근 벌어졌던 일부 폭력시위 장면이 동영상으로 상영됐다고 한다.
  
  '외국인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걱정스러웠겠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공 위원장은 "특히 과격시위의 모습이 외국 언론매체에 계속 보도돼 한국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가져왔다는 점이 오늘 회의에서 많이 강조가 됐다"고 했다.
  
  되묻게 된다. 집회나 시위 장면이 외국 언론을 통해 방영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 같은 '구조적 천대'가 전 세계로 알려지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설령 정부의 목표가 달성돼 '착취형 선진국'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들, 우리는 과연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파키스탄 청년의 얼굴을 몇년 만에 떠올렸다.  


  

  송호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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