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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무서워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환영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자녀

지난 1980년 11월20일 유엔총회는 아동의 기본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제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합니다. 협약에 따르면 전 세계 아이들은 국경을 초월해 생명을 유지하고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와 차별과 학대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동등한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아이들은 또한 모든 종류의 교육을 받을 권리와 아동이 신체적·정신적·도덕적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평균 수준의 생활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아동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알고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갖는다고 협약에 명시돼 있습니다.

협약은 이와 관련 3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아동 최선이익의 원칙’이 그 첫 번째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아동을 차별할 수 없는 ‘비차별의 원칙’과 ‘아동 존중(참여)의 원칙’이 있습니다.

협약은 특히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동 권리 실현의 책임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인데, 그 무엇보다 아동의 권리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 “우리 아가 잘 자네”
공청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2006.4.13 ⓒ 노준형/코리아포커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부끄럽게도 이에 한참 못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 하인즈 워드 열풍으로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혼혈아’ 문제에서부터 이른바 아동 수출국 1위국의 오명을 씌우고 있는 해외 입양 문제까지 아동 권리에 있어서는 후진국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동 권리 후진국 사회...이주아동 문제는 더욱 심각

이주노동자 아동의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니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자 불법체류자로 전락합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희망과 꿈을 안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우리 사회의 불청객이 되는 것입니다.

교육받을 권리 또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국제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이들은 모든 종류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에겐 먼 얘기일 뿐입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어두운 그늘이 아이들 머리 위에 드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이주노동자의 자녀 중 국내학교에 입학대상자는 9천5백여 명이지만, 실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1천5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무려 8천여 명의 아이들이 교육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일부 학생들의 경우, 추방이 무서워서 가명을 쓰거나 외출조차 못합니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에 소개된 영광(7·미노윈)이의 사연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의 아버지 하산뜨(33)씨와 어머니 야무나(32)씨 사이에서 태어난 영광이는 한국말 실력은 물론 김치를 좋아하는 등 또래 한국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 노준형/코리아포커스  



  

ⓒ 노준형/코리아포커스  



  

ⓒ 노준형/코리아포커스  


“나 스리랑카 가기 싫어. 나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

그러나 영광이는 지난 5일 황당하고도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영광이는 수업이 끝나고 자신을 데리러 올 엄마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엄마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영광이의 엄마는 목동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끌려간 것이었습니다.

영광이의 아빠는 영광이에게 자신의 조국 스리랑카로 가자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영광이는 “난 스리랑카 몰라. 난 한국에서 태어났고, 내 친구들은 다 한국에 있어. 나 한국에서 살 거야, 스리랑카 안 가”라며 울먹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광이의 바람대로 한국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영광이 역시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죠.

한국정부도 국제아동권리협약 당사국입니다. 지난 90년 9월25일에 이 협약에 서명을 하고, 다음해 1월20일 이를 비준했습니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사항을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1월 한국정부가 2001년에 제출한 2차 국가 보고서에 대해 “한국의 아동 관련 기준은 아동권의 보장과 증진에 우선권을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97년 이래 한국정부 예산에서 아동에게 할당된 예산이 계속 줄어들었다”며 심각한 우려의 뜻을 표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2003년 1월19일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해 이주노동자의 자녀들도 비록 청강생 신분이지만 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주아동...구시대적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은 물론 국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의료보험 혜택이나 보육에 대한 지원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책임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어느새 한국적 문화가 익숙해진 아이들이 단지 이주노동愍?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아동으로서 받아야 할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이주아동과 그 가족의 권리 보장법’ 공청회에서 이주아동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목사는 “이 땅에서 자라는 이주아동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비록 외국인 부모 출신의 아이들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과 이 땅으로 이주한 아이들을 지켜내는 일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몰아가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법적 근거도 없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거나 학교 교육과 건강권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우리 사회의 제도적·문화적 개선을 제시했습니다. ‘이민 다문화부’를 신설해 사회통합을 지향한 호주정부의 사례처럼, 다인종·다문화 사회에 걸맞게 사회의 법과 제도 역시 구시대적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 목사는 끝으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소개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유교 사상으로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그는 마음을 열고 민족을 초월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이주아동의 권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코리아 포커스 노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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