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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가 베트남 여성의 왕자님이라고?"

2006년 4월 26일 (수) 09:52   프레시안

"한국 남자가 베트남 여성의 왕자님이라고?"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마치 신데렐라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었다."

  조선일보 21일자 사회면에 실린 "베트남 처녀,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한 베트남인 유학생이 한 말이다. 이 기사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베트남에 간 한국 남성들과 현지 여성들이 결혼정보 회사에서 겪은 일을 르포 형식으로 담은 글이다.

  이 기사와 관련해 국내 시민단체 '나와 우리'와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이 25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베트남 여성을 상품화했다"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를 규명하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 '나와 우리'의 활동가들과 베트남인 유학생들은 이날 시위에서 "베트남 여성의 상품화를 방관하고 조장하는 조선일보는 반성하라"고 요구했다.


"결혼중개 업체의 광고와 다를 게 뭐냐"

  '나와 우리'는 기자회견에서 "해당 기사는 베트남 결혼을 미화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마치 진열된 상품을 고르는 것 같은 결혼중개 과정과 베트남 여성을 상품화하는 모습을 아무런 비판 없이 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와 우리'는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결혼알선 업체에 의해 이뤄지는 국제결혼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연구자와 운동가들이 이런 형태의 국제결혼 과정에서 나타나는 '매매혼 성격'에 대해 계속 비판해 왔다"면서 "이런데도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보인 '방관적 태도'는 언론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와 우리'는 "해당 기자가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간의 국제결혼이 물질을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며 이로 인해 선택하는 자와 선택받는 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낳는 현실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는 결혼중개 업체의 광고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기사와 함께 실린 '맞선' 사진에서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 점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 주오'라는 제목이 달린 이 사진과 관련해 '나와 우리'는 "이 사진과 사진제목은 베트남 여성들의 '자발성'과 '간절함'을 강조함으로써 상업화된 국제결혼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면서 "조선일보는 인격권으로서의 초상권을 침해당한 당사자들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유학생들 "기사를 읽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나와 우리'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이 나와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은 소감을 밝혔다.

  응웬 티 흐엉 센(서울대학교 사범대) 씨는 "길거리에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합시다'라고 적힌 흔한 플래카드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 구독률이 높은 일간지인 조선일보에서 베트남 여성의 결혼문제를 이런 식으로 첫 번째로 다룬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링 라이(국민대 MBA 과정)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유학생은 조선일보가 "베트남 여성들이 왜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국제결혼의 재미있는 면만 보여준 기사를 게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반지를 교환하고 축배를 드는 간단한 의식의 베트남 결혼식'이라는 대목은 베트남의 까다로운 결혼문화를 전혀 모르고 무시하는 표현"이라며 "한국이 베트남에 비해 더 우월한 국가이고, 베트남 여성들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과 '나와 우리'는 △기사에 게재된 사진으로 초상권을 침해당한 당사자들에 대한 공개 사과 △베트남 여성 상품화를 방관한 것에 대한 반성 △인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보도 기준에 관한 규정 마련 등을 조선일보 측에 요구했다.


"중매 사이트에서 기사가 인용되고 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 기사를 쓴 조선일보 채승우 기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사진의 여성들에겐 수 차례 확인했으며 편집국에서 토론을 통해 '사실 전달'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으나,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인 유학생들은 "베트남에서 중매업이 불법인 걸 알면서도 여성들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에이즈 검사 과정 등의 자세한 설명은 마치 광고를 보는 듯한데, 이번 기사가 중매 사이트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채 기자는 "인용이 되고 있다는 건 몰랐다"면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여 심층적인 보도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하는 등 화가 나 있는 유학생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나와 우리'의 김정우 사무국장은 "현재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보도가 베트남 현지 신문 '투오이 쩨'에도 실렸다"고 전하면서 "앞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및 인권단체뿐 아니라 베트남 현지 활동단체들과 함께 현지 및 한국의 신문에 투고하고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항의서한을 보내거나 항의집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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