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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섬에서 나를 찾는다

한국말을 할 때는 언어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어 시를 읽었을 때만은 한국말의 아름다움과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뜻을 잘 몰라도 시를 읽을 때는 내 마음이 기뻤다. 한국인들은 "소리"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여러 책을 보면 볼 수 있다. 특히 메일 아이디에 " ---소리"라고 써있는 아이디를 많이 볼 수 있다. 판소리, 북소리, 바다소리, 바람소리, 해금소리, 새벽소리, 빗소리, 여러 소리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뜻을 의미하고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리를 좋아하지만 특히 빗소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내 고향에서는 사람들이 비를 따라 자라고 나이를 먹는다. 비 내리는소리만 들으면 항상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고, 내 자신을 찾게 된다. 비를 맞으며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다니던 나의 어린 모습도 참 좋았다. 내 고향의 집들은 지붕을 길다란 나무 잎으로 만들었다. 비가 내리면 지붕에 비 내리는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 빗 물이 강하게 많이 내리면 소리도 커지고, 약하게 내리면 소리가 부드러워지면서 깊은 밤 속에 세상이 마음껏 노래하고 있는 듯 했다.
때로는 화를 내는 듯이 큰 소리를 내면서 벼락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때에는 아주 무서워서 우리 형제들이 집안 한곳에서 모여 앉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병아리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던 듯 하다. 가끔은 우리 어머니가 " 우리 아들이 착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돼. 거짓말 하지 말고 , 엄마 말을 잘 들어야 되! 응.." 하는 말을 해서 교육시키면 "응" 하고대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는 "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들이 비가 오면 하늘에서 무서운 소리와 벼락을 내려서 벌을 주게 된다.." 하며 우리 형제들이 그 때야 어머니에게 "응.." 하고 대답했다. 겁내고 있는 우리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우리 아들은 착하고,엄마의 말을 잘 들으니까 벌을 안 받고, 선물만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어느날 한 밤에 하늘이 무너질 듯하면서 비가 왔다. 세상 모든 소리가 엄청난 빗소리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그 날 밤.. 어떻게 잠 들었는지 모르고 잠 자기 전까지는 내가 나쁜 일 한 것 있는지? 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왔는지? 생각하면서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 쓰고 꼼짝 못한 채 깊은 잠에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오면 나무 위에, 잔디 위에 여러 곳에 아주 깨끗하고 부드러운 젤리 같은 것이 앉아 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비와 함께 젤리 같은 것들이 같이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비과일이라고 한다. 아주 부드러워서 막 가지려고 하면 녹아서 물이 되어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살살 손바닥 위로 올려서 입 속으로 쏙 넣어 먹으면 아주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비 내린 후 물로 씻어주기 때문에모두 세상이 새로워지고 나무들이 새파래지고 꽃도 피고 참새들이 소리 내어 노래하고, 자연의 향기도 향수보다 좋았다. 한국에서도 눈이 내린 후에 세상이 하얗고, 눈꽃도 피우고, 참 아름답다. 어린 아이들이 눈 덩어리를 굴려서 서로 던지고 눈사람 만들어서 노는것도 비 오고 난 후에 친구들과 뛰어 놀았던 나의 어린 모습과 같다고 생각 했다. 이 눈이나 비는 자연이 아이들에게 준 선물 이라고 생각했다.

가족과 함께 있었던 시절을 참으로 그리워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가족, 특히 어머니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래왔다. 내 얼굴만 봐도 내 속을 들여다 보시는 듯 하는 어머니의 표정 때문에 속이지 못하고,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충고도 해주시는 어머니께서 물어보신 것을 사실 그대로 얘기했다. 물어 보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보고 "불에서 떨어진 쇠봉" 이라고 하신다. 쇠 봉은 불속에 있을 때만이 모양을 만들 수가 있고, 불에서 꺼내면 모양을만들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나에게 항상 불이 돼 주고싶어 하셨던 어머니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일 것이다. 나도 항상 내 곁에 불이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불을 사랑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사실 내 고향에서 다섯 시간이상 비행기를 타야 올 수 있는 아주 먼 곳이다. 나는 한국이 정말로 궁금했다. 미스터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 수도 서울, 남북이 갈라져있고, 냉전시기에 언제나 터질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곳, 이 밖에는 아는 게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봐도 정보가 없었다. 눈 딱 감고, 사람 사는 곳이니까 나도 살수 있다, 마음먹고 온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난 이미 한국에서 1년 이상 살았다. 김포 공항에 도착했을 때 ... 그제서야 늘 궁금하던 한국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기분이었다.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었지만 한국 사람들은 코가 매력적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가 쑥 ~ 들어가있는 것도 아니고,크게 나온 것도 아니고, 코 앞이 마늘 알 같은 모양이니까 잡아 당기고 싶었다. 어느 회사에서 일할 때 한 아저씨가 나를 보며 다른 사람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 아니다고 말을 했더니 " 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눈에 그 놈이 그 놈이야… 다 똑 같다" 라고 아저씨의 말에 웃음이 나왔었지만 처음에 나도 그랬었다.

한국에 가면 외국에 간다는 생각에 모든 것은 나, 아니 내 고향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 지만 와 보니까 아닌 듯 했다. 내 고향에 피부 검은 사람 도 있고 하얀 사람도 있다. 다른 것은 도시자체가 높은 건물들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이라는 먼 땅에 왔으니 고향에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여자친구 에게 "한국에서 샤워하면 사람들이 옷을 다 벗고 알 몸으로 모여서 같이한다. 나는 아직은 못 해지만 언제 나도 한번 목욕탕에 갈 생각이다고" 편지를 써서 보내 본적이 있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보냈지만 웃긴 것인지.. 좋은 것 인지… 잘 모르고 " 오빠가 보내준 편지를 우리 언니들도 읽고, 가끔 엄마도 읽으니까 이런 식으로 편지를 쓸 테면 아예 보내지 말아요.." 내가 다른 문화에 대해서 재미나게 써주는데 왜 문제가 있나…? 하여튼 이런 내용을 편지를 쓰면 안된 다는 것을 기억해 놓았다. 그리고 가족에게 쓴 편지에도 " 저는 한국에서 하루 열 다섯 시간 , 스무 시간 일해서 열심히 돈 벌고 있어요.. 그런데 비오는 밤에 잠자는 것처럼 깊은 잠을 열흘동안 이어서 자고 싶다고" 편지에 썼을 때 어머니가 눈물 흘린다고 해서 다음부터 편지에 쓰지 말아야 할 새로운 내용 하나를 또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지하철과 지하도로이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어디 가려고 할 때마다 지하에 들어갔다가다시 나오고 또 지하에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힘이 빠지게 되면 그 때는 " 참… 이 나라 사람들이 전생에 쥐였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달에 십오만원 주고 문 닫고 있으면 낮인지 밤이지 모르고 지내야 했던 내가 살던 작은 지하 방을 떠올리면서 나도 전생에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에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있다.

지하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떠오른 이야기가 있다. 한국은 속도가 아주 빠른 나라다. 삼 개월 정도 해외 여행 떠났다가 온 사람들을 보면 한국사람이지만 외국에 갔다가 다시 외국에 와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많은 일들 중에서 고속 철도도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 회사에서 기계를 만드는 것을 배우고, 학교에서도 기계를 공부했던 나는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산업 기술을 배워서 내 분야에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이유는 어느 회사에 가서 일해도 기계에 있는 버튼 다섯 개에서 열 개 정도를 설명하고, 기계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생산품이 나올 정도 알면 더 이상의 기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기술을 제대로 배워서 자기 일자리를 뺐어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회사 기술자의 걱정, 외국인은 몸으로 때우는 일만 시키려고 생각하는 고용주 등.. 여러모로 기술을 배우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어렵게 고생해서 기술을 배우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잘 배워 왔던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만 찾아서 일했다. 내 분야에서 기술자이지만 외국인을 기술자로 대우해주며 일을 시키겠다는 고용주는 없었다. 아르바이트 급에서 시작하다가 일 하는 것을 보고 기술자라고인정 했지만 월급은 기술자의 월급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나마 인정을 받아서 고맙게 생각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일 했다. 외국인 노동자라고해서 사회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은 우리도 똑 같은 사람이라고인정을 받는 것 조차 힘들었다. 몇 년 전에 일했던 회사에도 나를 기술자라고인정하고 일을 시켰다. 물론 월급은 초보자 월급이었다. 회사는 금형 회사이고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인(도면)을 받아서 그대로 철판 아니면 쇳덩어리를 기계를 사용해서 가공해주는 일이었다. 어느날 크기는 내 키 만하고, 무게는 6톤 정도 되는 쇳덩어리를 사장님이 가져왔다. 다른 곳에서 대충 가공해온 모양이었다. 그 때 사장님이 나에게 이렇게 설명을 했었다. 한국철도에서 고속철도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에 최고의 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각자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고속철도 차 두 칸 사이를 연결 시켜주는 큐브이다. 일반 기차는 차 두 칸 사이에 천막으로 되어있고, 고속철도 차에는 고급형 고무 큐브를 사용 하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바로 그 고무 큐브 첫 모형의 금형을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우리에게 자부심도 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사장님의 말에 동의 하는 나도3개월 동안 그 일에만 매달렸고 커다란 쇳덩어리를 가공하는 일을 주야로 했었지만 결국은 우리회사에하청을 준 회사와 문제가 생겼다. 몸도 지치고 월급도 못 받는 상황이 되었다. 결론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 안받고 그만두게 되었다. 싸우기 싫어서 조용히 그만두고 나왔으니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고 아직도 그 회사 사장님을 길 거리에서 만나면 인사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기도 한다. 만약 내가 돈 달라고 했다면 이 사람이 나를 만나도 인사하고, 웃어줄 수가 있을까… 생각 하게 되었다. 나는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지도 않은 돈 때문에 사람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그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를 포함한 사회의 소수자들은 친구를 원하고, 돈을 잃는 것 보다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잃은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도 두 달치 월급을 못 받아서 나와 친구들은 회사사장을 만나서 돈 달라고 하고 있을 때 비겁하게 내 뒤에서 나를 때린 부장 때문에 귀에서 상처를 입어 2년 동안 병원에 다녔다. 건강보험도 없이 내 돈 내고, 시간 내고 다니기 싫어서, 병원에서 일 하는 간호사를 내가 보고 싶은 내 여인이라고 생각해 빠진 없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본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월급 안받고 한번만 손해 보는 것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다 내 가족에게 말 하고 싶지않다. 특히 어머니에게 속이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와 전화 통화하는 것을 피했던 적도 있다. 한 동안 집으로 돈을 안 보냈더니 집에서 편지가 왔다. 그러나 계속 월급을 못 받았기 때문에 돈을 보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일해서 월급 받으면 돈을 보내겠다고편지를 써보냈다. 가족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돈을 보내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어디 먹고 잘 데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힘들고 외롭고, 가족에게 돈을 보내줄 수 없어 죄송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는 아주 슬픈 목소리로 한 두 마디 하시더니 동생한테 전화를 바꿨다. 동생이 해준 얘기는 이렇다 " 형이 가족을 떠나서 결혼할 준비 하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마음이 아프셔.." 무순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 동생이 계속해서 " 형 여자 가 있고 결혼할 준비를 하는 것 좋지만 가족을 속이고 거짓말 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여자한테 돈 보낸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 .세상에 일을 시켜놓고 돈 안주는 데가 어디에 있어요.. . 나도 지금 대학에 들어가요… 형이 가족 사정을 알면서 왜 그랬어요…. 아무튼 형이 보낸 편지를 읽고 어머니하고 여동생들이다 울었어요 …" 동생이 해준 말을 들고 나는 아니라고 동생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어머니와 여동생들에게 네가 잘 설명 해줘라 … 형 월급 받으면 바로 돈 보내줄게… 네가 대학에 들어갈 때 힘들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라는 말 밖에 더 이상의 말을 나는 못했다. 가족들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전화했다가 내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이 스르르 빠져 버렸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귀여워서 나보고 " 불에서 떨어진 쇠봉" 이라고 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귀여운 " 불에서 떨어진 쇠봉" 이 아니고 어머니의 가슴에 상처를 낸 지독한 " 불에서 떨어진 쇠봉" 이 될 것이다. 누구는 나를 일 시켜놓고 월급 안주고, 나를 쫓아내면 끝나지만.. 월급을 못 받고 쫓겨난 나는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슬픈 때도 있고, 즐거운 때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며 친구들에게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슬픈 것도 재미나게 느낄 줄 알고, 웃음거리를 찾아서 산다. 한국말을 잘 모르고 저녁 식사를 위해서 닭 한 마리 사려고 동네 가게에 갔다가 '닭'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손짓발짓을 하고, 그래도 못 알아듣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계란 어머니"를 달라고 해서 힘들게 닭을 사온 친구의 고통을 보고 같이 웃어주면서 친구의 아픔을 없애준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경찰에 잡아갈 수 있다고 하는 회사 사장님과 같은 일한 한국인 동료들 때문에 회사밖에 한번도 나가 본적이 없는 한 친구가 갑자기 경찰 옷을 입고 회사에 나온 사장님을 보고 공장 뒷문을 열고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수 시간동안 숨어 있다가, 한국인 동료들이 찾아와서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단속을 피해 3층 건물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렸던 친구가 그 일에 대해 떨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 넌 영화배우 성룡보다 훨씬 낫다..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연습 해라… 성공한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고 웃으면서 하는 한 친구의 말끝에 아픈 기억들이 사라진다. 그것을 보고 우리 친구들이 슬픔과 즐거움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와 내 친구들은 편지에 쓰면 안 되는 일을 우리끼리 이야기로 풀어내고 편지에는 절대 안 쓴다.

나는 한국에서 살며, 2002년 월드컵 때 빨간 티셔츠를 입고 " 대한민국" 이라 외치며 응원하기도 했고, IMF때도 애정 때문에 한국을 떠나지 못 했다. 그 때 회사를 살려내려고 함께 했던 한국인 동료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다른 이주노동자 친구들처럼 공장과 회사 내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내가 아는 한국이 이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더 알고 이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한국 사회도 우리를 더 알고 이해하고 한국에 대해서 보다 더 알려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또 다른 한국을 알게 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알고있었던 한국이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두 가지를 나눠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등하게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에게 한국이 뭐라고 안 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생각에 나는 한국이라는 연극을 보러 온 사람이다. 다른 것은 나도 연극 주인공중에하나가 되어 보았다는 것이다. 연극을 보다가 나는 연극의 주인공인지… 연극 보러 온 사람인지… 연극을 만든 사람인지… 나도 나를 모르고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쑥 빠지고 있었다. 이제는 연극 보러 오기전의 내 자신을 찾아서 집에 돌아 가야 할 시간이다. " 안녕히" 라는 말을 하며 내 고향으로 가고 싶다. 깨끗한 비를 맞으며 빗속을 걷고 싶다. 예전처럼 뛰어 놀 수는 없겠지만 비과일도 받아서 먹고 싶다. 예전처럼 맛있는지는모르겠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어머니와 이야기 하고 싶고, 지붕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깊은 잠도 자고 싶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에게 잠자기 전에 우리 아들 착하게 살라며 무서운 벼락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편지를 쓸 필요도 없고, 나도 속이지않고 어머니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을 안 하게 될 것이다. 난 가족과 함께 있으니까.. 가끔은 한국에서 같이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서 "계란 어머니" 얘기도 하고, 최고의 속도로 등산 타는 친구의 얘기도 할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운 내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 자신을 서둘러서 찾아야 한다. 물론 내 고향은 내 고향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내 고향은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고향에 가서 다시는 연극을 안 볼 것이다. 그리고 남이 시킨 대로 연극을 안 할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 된 연극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것이다. 내 고향은 한국에서 볼 때 남쪽 끝에서 있다. 그 이름은 " 황금의 나라 미얀마" 이다.

Text by: 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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